콘텐츠 왕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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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월 배당)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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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r.investing.com/equities/disney-divid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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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왕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 <1편>
이번 글에서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단순히 기업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해볼까 했으나 창시자 중 한 명인 ‘월트 디즈니’의 생애가 매력이 있어서,
글이 길어질 것 같은 이유로 2편 정도로 나눠서 게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기업의 창립과 창시자, 다음 글에서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역사 등을 게시하겠습니다.
먼저 기업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The Walt Disney Company)는 1923년 창립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디즈니 스튜디오'하면 미키마우스, 디즈니랜드 등이 가장 유명하죠.
특히 디즈니랜드는 방대한 규모의 테마파크이며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있습니다.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그럼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 시작하겠습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
1. 창업주 월트 디즈니는 누구인가?
월트 디즈니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업 미술에 뜻을 두어 광고 만화 등을 그렸습니다.
그는 '미키 마우스'를 창조한 장본인입니다.
그 뒤 미키, 도널드 등 많은 만화 영화를 제작했고, 삼원색 방식에 의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인 숲의 아침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뒤에도 돼지 삼 형제 등의 걸작 만화를 제작했습니다.
1937년,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개봉하여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장편 영화 상영 도중에 잠시 보여주는 소품과 같은 개념이었으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개봉 직후 이전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성공했습니다.
전함 포템킨의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은 이 영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밖에도 자연 과학 영화, 기행 단편 영화 등 수많은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TV용 영화를 제작하여 대호평을 받았다.
1955년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어린이 유원지를 세웠고, 영화 제작자일 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영화 업계와 글로벌 오락 산업에 끼친 영향은 아직까지도 선명히 남아있으며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월터 디즈니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엔터테이너이자 비정치적 공인'이라고 칭했습니다.
2.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월트가 4살이 되었을 때 월트의 부모님은 시카고의 복잡한 도시환경이 자녀 교육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시골로 귀농했습니다.
월트는 형제들과 달리 그림에 무척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떤 날에는 집의 벽에 붓으로 돼지를 그리다가 콜타르를 뒤집어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즈음 월트는 아는 의사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말을 어른 못지않게 잘 그리는 등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미술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당시 집안 형편이 가난했고, 아버지 역시 반대했습니다.
월트는 7살이 되었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신문팔이 일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신문팔이를 하다가 신문에 나오는 만화를 자주 보게 되고,
그는 결국 아버지에게 그림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월트의 진심에 감동받아서 그림 공부를 허락했고, 월트는 동네의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월트 가족은 예전에 시카고에 살던 집으로 다시 이사했습니다.
유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월트는 군대에 간 형들을 따라서 해군에 지원했으나 당시 16세이던 월트는 입대를 실패했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로부터 적십자사에 구급 부대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1900년생까지만 지원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래서 월트는 본인 원서의 생년월일을 1901년이 아닌 1900년으로 적어 지원하며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월트는 부대 내 상점에서 일하게 되어,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솜씨는 온 부대에 소문이 나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군인들의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 후 크래커라는 동료의 제안으로, 패전한 독일군들의 철모에 그림을 그린 후 기념품으로써 그것들을 미국에서 판매했습니다.
1919년, 그는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캔자스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화가 혹은 관련된 직업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광고용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취업하고, 인형을 움직여서 촬영하는 1분짜리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창립
- 래프 오 그램
'래프 오 그램 (Laugh-O-Gram)'이라는 이름의 1분짜리 애니메이션 필름 릴을 당시 회사 동료였던 하먼 형제와 제작해서 뉴먼 극장의 주인인 프랭크 뉴먼에게 보여줬습니다.
래프 오 그램은 그 시대 소단위 규모의 사회문제들을 풍자한 만화로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자만화들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월트가 찾아간 뉴먼은 1분의 짧은 만화를 감상한 뒤 망설임 없이 그 필름을 사고 월트와 시리즈 계약을 맺었습니다.
훗날 월트는 래프 오 그램 필름사를 설립하여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그 회사의 사장이 됩니다.
- 워너브라더스에서의 시작
금전적인 문제로 래프 오 그램의 운영이 힘들었던 월트는 새로운 시작점을 할리우드로 계획했었지만 당시 애니메이션의 중심지는 당연히 뉴욕이었습니다.
형과 함께 고생하며 만든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필름으로 계약을 성사해볼 심산으로 여러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으나 반복된 실패를 겪었습니다.
결국 월트는 실사영화의 감독이 되는 것, ‘앨리스’를 파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보였으니,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 배급자인 마거릿 윈클러의 눈에 들었던 것입니다.
워너 브라더스의 비서인 동시에 자신만의 커리어 확장을 바라던 그녀는
애니메이션 배급 쪽에서 이미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를 보자마자 시리즈의 성공을 예상하고 시리즈 배급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이 일이 윈클러의 상사에게도 알려지게 되고,
월트 디즈니의 워너브라더스에서의 첫 번째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 월트 형제의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 창립
그렇지만 계약 성사 뒤에도 월트를 괴롭혀왔던 ‘돈’은 여전히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그런 월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형인 로이 디즈니입니다.
로이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월트의 뜨거운 열정에 감동하고 그를 동경하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하루의 절반을 병으로 인한 피로로 누워있으면서도 사무실을 구하고 새 아파트를 임대했습니다.
초창기의 일이지만 월트와 함께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일 등을 맡으면서 스튜디오의 재정까지 책임지고 그 역할은 수십 년 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월트 형제는 마침내 1923년에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 첫 간판을 걸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월트 디즈니
그는 어려운 고난들이 연속되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형인 ‘로이 디즈니’가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지지로 동생이 평생의 꿈을 잃지 않게 도운 로이 디즈니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수많은 명작을 만들고, 디즈니랜드까지 세워서 환상적인 왕국을 구현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내면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는 순수한 동심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월트 디즈니의 생애와 스튜디오 창립을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를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디즈니 스튜디오의 위기를 재건으로 이끈 CEO 밥 아이거의 전략도 같이 알려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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